교육이 기업문화를 만든다
— HRD의 렌즈로 본 ‘올바른 기준’의 설계
서론
경영자가 “기업문화를 챙기라”는 말을 남기고 회의를 나간다면, 교육부서는 두 갈래에서 망설이게 된다.
대대적 진단을 할 것인가, 내부에서 소규모로 시작할 것인가. 외부 컨설턴트를 쓰자니 예산과 신뢰가 부담이고, 자체 추진을 택하자니 역량이 걱정된다.
이 사이에서 가장 흔한 선택은 교육 프로그램을 늘리는 일이다. 그러나 교육은 행사로만 존재하면 기업문화의 변화에 다다르지 못한다.
기업문화는 회의실 밖 현업에서 반복된 선택이며, 압박이 클 때 드러나는 기준이기도 하다.
HRD가 다뤄야 할 것은 “좋은 말”이 아니라 “같은 장면에서 같은 선택이 나오게 하는 기준과 연습”이다.
본론
기업문화는 슬로건이 아니라 현업에서 장면으로 존재한다.
납기와 안전이 충돌할 때, 고객의 부탁과 규정이 어긋날 때, 보고와 책임의 경계가 흐릴 때—조직은 자기 문화를 말하지 않아도 말하게 된다.
HRD의 기여는 이 결정적 장면을 학습자료로 바꾸는 데서 시작된다.
교육이 문화를 바꾸는 길을 세 가지 축으로 본다.
첫째, 행동기준을 언어화한다.
“우리는 고객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문장이 아니라,
“A 상황에서 우리는 시간보다 안전을 우선한다”는 구체적인 실행 문장이 필요하다.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키는지가 문장으로 합의되면, 기업문화는 가치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행동하는 선택의 규칙이 된다.
HRD는 핵심장면을 수집하고, 그 장면별 작동 문장을 정리해 현장 언어로 배포한다.
이때 포인트는 정답을 강의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선택의 경계를 분명히 해 두는 일이다.
둘째, 행동을 리허설한다.
교육은 지식을 늘리는 시간이 아니라 압박에 대비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실제 조직에서 기업문화가 어그러지는 지점은 늘 바쁘고, 예산이 부족하고, 관계가 민감한 순간이다.
그래서 교육훈련은 그 순간을 모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외공지 문안을 30분 안에 확정해야 하는 상황, 생산 차질을 최소화하며 안전 경고를 내야 하는 상황을 시뮬레이션으로 돌린다.
서로의 선택을 공개하고, 왜 그 선택을 했는지 추적하면, 기업문화는 학습의 대상이 아니라 기술의 대상이 된다.
셋째, 이야기를 축적한다.
기업문화는 이야기를 통해 오랫동안 전승된다.
실패를 덮지 않고 복기한 기록, 어려운 선택을 했던 결정문, ‘그날의 포기’를 적어 둔 짧은 메모가 다음 사람의 기준이 된다.
HRD는 교육 뒤에 흩어지는 산출물을 모아 보관소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 보관소가 경영자의 메시지보다 강한 이유는, 말이 아니라 증거로 설득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기존 문화를 바꿔야 할 때도 원리는 같다.
“혁신적이 되자”는 구호 대신, 새 사업이 반드시 맞닥뜨릴 장면을 먼저 고른다.
예컨대 출시 일정과 품질의 긴장, 파트너와의 리스크 공유, 초기에 발생할 불가피한 반품 대응. 각 장면에 대한 작동 문장을 합의하고, 해당 장면을 리허설한다. 이렇게 하면 변화는 추상적 가치가 아니라 예상된 순간에서의 다른 선택으로 구현된다.
HRD의 훈련은 그 선택을 몸에 먼저 새기는 연습이 된다.
여기 한 사례가 있다.
한 소비재 회사가 신제품 캘린더를 앞당기기 위해 기존의 신중한 기업문화에서 빠른‘속도’가 필요로 했다.
교육팀은 교육자료를 늘리지 않았다.
대신 세 장면을 골랐다. ① 원가 상승 시 사양 조정, ② 리콜 가능성 점검, ③ 대외공지 문안 확정. 각 장면마다 “우리는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킨다”는 문장을 합의하고, 45분짜리 리허설을 돌렸다.
첫 달에는 여전히 안전장치가 과했다. 둘째 달부터 문장이 몸을 이끌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출시를 미루자”가 아니라, “이번에는 포장 변경으로 시간을 번다”가 나왔다.
교육은 다른 특별한 방법을 써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같은 장면에서 같은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그 선택이 쌓이자, 개인의 생각으로 일하기 보다 조직의 습관으로 접근되었다.
결론
교육이 기업문화를 바꿀 수 있느냐는 질문은 틀렸다.
교육이 기업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다만 교육이 바꾸는 것은 태도가 아니라 반복되는 장면을 선택하는 것이다.
HRD는 장면을 고르고, 작동 문장을 세우고, 리허설을 조직하고, 이야기를 남긴다.
진단이 필요하면 하되, 진단이 시작을 늦추게 두지 않는다.
외부 컨설턴트가 들어오면 좋고, 들어오지 못하면 핵심 장면(2~3가지)만으로라도 시작한다.
기업문화는 회의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같은 장면에서 같은 선택이 반복될 때, 서서히 바뀐다.
HRD가 그 반복을 설계하면, 교육은 행사가 아니라 조직원들이 행동해야 할 기준이 된다.
그리고 그 기준은 새 사업의 모험에도, 오래된 습관의 교정에도, 조직의 품위를 지키는 마지노선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