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 논의와 고령 인력의 시간
— HRD가 풀어야 할 ‘역할의 재설계’
서론
한국 기업은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곡점 위에 서 있다.
65세 이상 고령층 비중은 빠르게 확대되고, 60세 이상 취업자는 2025년 7백만 명을 넘어섰다. 고령층 경제활동은 사상 최고 수준으로 증가하는 중이다.
동시에 국회와 정부는 법정 정년을 60→65세로 단계 상향하자는 법안을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있다(63세 2027년, 64세 2032년, 65세 2033년 목표안).
OECD도 한국의 55~64세 고용률이 69.9%로 회원국 평균을 상회한다고 지적한다. OECD 그러나 제도 변화의 동의가 곧 현장 운영의 해법을 뜻하지는 않는다.
2022년 대법원은 업무·역할 조정이나 보완조치 없이 임금만 크게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연령차별로 무효라 판시했고, 이후 사례에서도 유·무효가 엇갈리며 기업의 리스크 관리 난도가 높아졌다.
한편 초저출산과 노동력 축소 전망은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구조”를 요구하지만, 현장에서는 역할 공백·세대 갈등·성과책임 배분의 난제가 얽혀 있다.
요약하면 사회는 연장을 요구하고, 법·여론은 공정과 권리를 묻고, 기업은 “무엇을 맡기고 어떻게 보상·책임을 설계할 것인가”라는 운영의 난제 앞에 서 있다.
본론
1) ‘시간의 등가성’ 원칙: 임금이 아니라 역할의 희소성으로 설득
감액·정년연장 국면에서 핵심은 ‘ 임금 80%면 역할도 80%’가 아니다.
희소성과 위험을 반영한 역할 등가성이 필요하다.
예컨대 고위험 의사결정의 2차 검토, 품질·안전 표준의 최종 손질, 클레임 루트코즈 도출처럼
대체불가성이 높은 과업을 포트폴리오로 묶어 임금과 연결한다.
선언은 간단하지만, 설계는 정교해야 한다. —역할 정의(책임·권한·리스크), 산출물(결정문·리스크 평가), 만료·재평가 주기를 문서화한다. (대법 판시 취지: 단순 감액이 아니라 역할·보완조치 설계가 있어야 정당성 가능).
2) ‘표준–판단–전이’ 3축 직무 설계
고령인력에게 일반 라인 증원이나 보조업무를 붙이면 좌절이 커진다. 오히려 그들의 경험이 가장 크게 수익화되는 영역을 3축으로 고정한다.
● 표준(Standardize): 암묵지를 작업표준·위험 시나리오로 마지막 손질.
● 판단(Second Opinion): 개인정보·안전·대외공지·가격/약관 등 고위험 결정의 사전 검토자.
● 전이(Transfer): 후임 2~3명과 ‘그림자–교차–압력(Shadow–Swap–Stress)’ 경로로 동행 전수.
이 구조는 ‘자리’가 아니라 임무를 준다. 성과 책임은 팀 지표(불량·재작업·사고·클레임)로 귀속시켜 ‘놀아서 눈치’ 문제를 구조적으로 차단한다.
3) ‘역(逆)온보딩’: 세대 간 학습의 방향을 뒤집는다
후배는 디지털·신공정·툴에 밝고, 선배는 해당 경험을 가지고 있다.
월 2회 60분, 선배–후배가 번갈아 가르치는 양방향 수업을 만든다.
예로, 선배 파트는 실패 복구의 순서·금지선, 후배 파트는 데이터·툴·자동화.
이때 산출물은 ‘합동 결정문’ 1건(대안·기준·포기 포함)으로 통일한다.
서로의 언어가 맞물릴 때, 신·구의 장점이 재합성된다. (OECD 고령고용 진단 맥락상 “더 오래 일하되, 일의 내용이 바뀌어야” 지속 가능하다고 함).
4) ‘퇴장 지표’의 경영화: TTE·TTT로 운영한다
지속가능한 배움은 입장만큼 퇴장을 잘 설계해야 한다.
● TTE(Time-to-Exit): 특정 핵심 기술이 조직에서 사라지기까지 남은 시간
(퇴직 예정·건강·중복인력 여부 기반).
● TTT(Time-to-Transfer): 같은 기술이 후임에게 임계 수준으로 전이되기까지
걸리는 시간.
두 지표를 분기 보드에 띄우고, 경영·현장·HRD가 함께 본다.
정년연장 논의가 ‘몇 년 더’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언제까지 넘길 것인가’의 문제로 재프레이밍되어야 한다.
5) ‘사회적 요구–기업 운영’ 간 통로: 연장 재원과 사용의 투명화
정년연장·임금조정이 청년고용과 연동된다는 명분이 있으려면, 회사 안에서 재원의 흐름이 보여야 한다.
임금 조정분의 일정 비율을 ‘신규채용·전환교육·안전투자’로 귀속시키고, 반기마다 시각화 보드로 공개한다.
투명성은 갈등을 줄이고, 고령 인력 본인에게도 자부심의 근거가 된다.(연장·연금개혁 사회적 맥락).
결론
정년연장은 제도의 문제이자 업무 내용의 재설계 문제다.
사회는 오래 일하라 요구하고, 법은 공정성을 묻고, 기업은 운영의 실현 가능성을 따진다. 해법은 ‘몇 년 더’가 아니라 ‘무엇을 맡길 것인가’에 있다.
역할 등가성, 3축 직무 설계, 역온보딩, TTE·TTT 지표, 재원 투명화—이러한 실천이 연결되면, 고령 인력은 ‘남은 사람’이 아니라 남길 일을 가진 사람이 된다.
그러면 연장은 비용이 아니라 지속성의 투자가 된다.